미국 민주당의 대표적 진보 정치인이자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상징이었던 바니 프랭크 전 하원의원이 19일(현지시간) 밤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의 오랜 측근이자 전 선거 캠프 매니저였던 짐 시걸이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프랭크 전 의원은 지난 4월 울혈성 심부전 진단을 받고 메인주 오건키트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왔다.

그의 죽음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월가를 뜯어고친 도드-프랭크법의 주역이자, 미국 정치사 최초로 자발적으로 커밍아웃한 현직 의원이라는 두 가지 무게가 그의 이름에 동시에 얹혀 있다.

뉴저지주 베이온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 매사추세츠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이 백악관을 가져가며 민주당이 참패한 해였지만, 그는 흐름을 거슬러 워싱턴에 입성했다. 이후 무려 32년간 의정활동을 이어갔다.

프랭크 전 의원은 스스로를 "왼손잡이에, 게이에, 유대인"이라고 소개하는 인물이었다. 거침없는 말솜씨와 날 선 위트로 유명했고, 진보 진영의 대변자로 활동하면서도 당 지도부와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실용주의를 택했다.

가장 큰 족적은 역시 금융개혁이다. 그는 2007년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에 오른 직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부시 행정부와 함께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후 크리스 도드 상원의원과 손잡고 1930년대 뉴딜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규제 법안을 만들어냈다. 은행 자본건전성 기준 강화,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 시스템 리스크 감독 기능 신설이 모두 이 법에 담겼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도드-프랭크법 상당 부분은 완화 절차를 밟고 있다.

1987년의 커밍아웃도 미국 정치 지형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당시 한 기자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 성 정체성을 묻자, 그는 짧게 답했다. "맞아, 그래서 뭐?" 이후 그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며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소수자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동성 배우자 짐 레디와 결혼하며 현직 의원 중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한 인물이 됐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그를 두고 "비전과 약속이라는 면에서 누구도 그를 능가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역시 "그의 한 줄 한 줄이 매서웠고, 또 그만큼 재치 있었다"며 애도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강한 비판을 이어왔다. 호스피스 입원 직전 인터뷰에서 그는 "사회를 더 공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전통적인 정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