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AI 칩 패권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사실상 독주해온 엔비디아 대신, 한동안 잊혔던 인텔과 AMD, 마이크론으로 자금이 빠르게 옮겨가는 모습이다.

CNBC 등에 따르면 지난주 인텔과 AMD는 약 25%, 마이크론은 37% 넘게 뛰었다. 광케이블 업체 코닝까지 18% 상승하며 합류했다. 올해 들어서만 인텔은 200% 넘게 올랐고, 마이크론은 1년 새 750% 폭등하며 시가총액 80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같은 기간 엔비디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나스닥과 큰 차이가 없다.

미즈호의 조던 클라인 애널리스트는 이번 흐름을 두고 “AI 시장의 권력 교체”라고 표현했다.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GPU 일변도에서 벗어나, CPU와 메모리, 광통신 등 주변 부품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인텔은 4월 한 달간 주가가 두 배 넘게 뛰며 사상 최고의 월간 상승률을 기록한 데 이어, 5월 초에도 33% 추가 급등했다. 지난주에는 애플이 미국 내 디바이스용 프로세서 생산을 인텔과 협의 중이라는 보도, 그리고 일부 칩 위탁생산 합의에 도달했다는 후속 보도가 잇따라 나오면서 단숨에 27% 가까이 폭등했다.

여기에 지난해 9월 엔비디아가 50억 달러 규모로 인텔 지분 약 4%를 인수하고, 미국 정부가 CHIPS법 기반으로 약 89억 달러를 투자해 10% 지분을 확보한 것이 누적된 호재로 작용 중이다. 2024~2025년 적자와 경영진 교체로 휘청였던 인텔이 미 정부, 엔비디아, 그리고 애플로 이어지는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시장의 시선이 메모리와 CPU로 옮겨가는 배경에는 AI 워크로드의 무게중심 이동이 있다. 모델 학습 중심에서 ‘AI 에이전트’와 추론 단계로 무대가 넘어가면서, GPU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자리잡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데이터센터 CPU 시장이 2025년 270억 달러에서 2030년 6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본다.

메모리 쪽 그림은 더 극적이다. 마이크론 CEO 산제이 메로트라는 “고객사가 요구 물량의 절반에서 3분의 2 정도만 받고 있다”고 밝혔다. HBM 공급 계약은 이미 2027년까지 잡혀 있다. 같은 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어, 한국 반도체주에도 직접적인 수혜가 이어지는 흐름이다.

다만 이번 순환이 추세적 전환인지, 단기 분산 매매에 그칠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쥐고 있고, 올해 매출 70% 성장 전망도 유효하다. 시장은 6월 말 마이크론, 7월 인텔의 다음 분기 실적과 애플·인텔 협력 구체화 일정을 다음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