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퇴자들의 노후가 흔들리고 있다. 매달 들어오는 연금은 그대로인데 장바구니 물가와 병원비가 매섭게 오르면서, "내 돈이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고 답한 은퇴자가 10명 중 6명에 달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Schroders)가 최근 발표한 미국 은퇴자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예상보다 생활비가 훨씬 많이 든다"고 답했고, 무려 60%에 가까운 은퇴자는 노후자금이 얼마나 더 갈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가장 큰 부담은 단연 의료비였다. 은퇴자들이 매달 소득의 약 16%를 의료보험료와 처방약값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3분의 2는 "메디케어(미국 노인 의료보험)가 이 정도까지 부족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슈로더의 미국 확정기여형(DC) 연금 책임자 뎁 보이든은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은퇴자들에게 물가 부담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라며 "많은 사람이 상승하는 비용을 감당할 계획 없이 은퇴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은퇴자들이 꼽은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인플레이션, 의료비, 주식시장 급락, 연금 인출 전략 부재, 그리고 '내가 모은 돈보다 더 오래 살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돈 걱정은 건강까지 갉아먹고 있다. 응답자 3분의 1 이상이 "재정 스트레스가 내 건강을 해칠까 걱정된다"고 답했으며, 약 30%는 돈 문제로 잠을 설친다고 했다.

현재 재정 상태를 묻는 질문에 "꿈같은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단 4%에 그쳤다. "편안하다"는 응답이 37%, "나쁘진 않지만 좋다고도 못 하겠다"가 35%였다. 사실상 절반 이상이 노후를 마음 편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 역시 의료비 부담과 노후자금 고갈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 설계가 '퇴직 시점'이 아니라 '퇴직 이후 30년'을 겨냥해야 한다는 경고가 미국에서 먼저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