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홈인테리어 유통기업 홈디포가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숫자보다 CFO 발언에 쏠렸다.

리처드 맥페일 홈디포 최고재무책임자는 야후 파이낸스 인터뷰에서 “평균적인 소비자들이 휘발유값 상승으로 분명히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현재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달러를 웃돈다.

소비자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미국 최대 유통기업 경영진의 입에서 직접 나온 셈이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소비 패턴의 변화다. 페인트칠 같은 작은 DIY 프로젝트는 여전히 잘 팔린다. 반면 목재, 건축 자재, 창호, 바닥재, 조명 같은 큰 공사용 제품 매출은 뚝 떨어졌다.

“소비자들은 경제 불확실성과 전반적인 구매력 압박 때문에 큰 프로젝트를 계속 미루고 있다”는 게 맥페일의 설명이다.

지갑을 닫은 게 아니라, 사이즈를 줄였다는 얘기다. 큰돈 들어가는 리모델링은 미루고 페인트 한 통으로 끝내는 분위기가 미국 가정에 자리잡았다.

1분기 실적도 이 흐름을 그대로 보여줬다. 매출은 418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 늘면서 시장 예상치 416억 달러를 웃돌았다. 조정 주당순이익은 3.43달러로 컨센서스 3.41달러를 살짝 상회했다.

다만 동일점포 매출 성장률은 0.6%에 그쳐 월가가 기대한 0.9%에 못 미쳤다. 평균 거래액은 2.2% 증가했지만, 거래 건수 자체는 1.3% 감소했다. 손님은 줄었는데 한 사람이 좀 더 많이 산 구조다.

발표 직후 홈디포 주가는 장 초반 2% 가까이 하락했다. 경쟁사 로우스 주가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배경에는 고금리 장기화가 깔려 있다. 모기지 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머물면서 신규 주택 거래가 묶여 있고, 평균 주택 가격은 40만 달러 안팎을 맴돈다. 집을 살 엄두는 안 나고, 큰 공사도 부담스러우니 결국 작은 손질로 만족하는 구조다.

홈디포의 대응 전략은 두 갈래다. 첫째는 프로(전문 시공업자) 부문 강화다. 작년 SRS 디스트리뷰션을 185억 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올해는 냉난방·공조 도매유통업체 밍글도프스까지 사들였다. DIY 시장이 식는 동안 B2B에서 답을 찾는 그림이다.

둘째는 디지털과 AI 강화다. 1분기 디지털 매출은 전년 대비 10% 늘었고, AI 기반 상품 추천 시스템이 매출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홈디포는 2026년 가이던스를 그대로 유지했다. 동일점포 매출은 보합에서 2% 성장, 전체 매출은 2.5~4.5% 성장 범위다. 다만 경영진 스스로 “지금은 가이던스 범위의 위쪽이 될지 아래쪽이 될지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번 발표는 국내 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 소비 둔화는 한국 수출 기업, 특히 가전·건자재·인테리어 수출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LG전자, 삼성전자 생활가전 부문, 그리고 한샘, KCC, LX하우시스 같은 종목들이 미국 주택 시장 흐름과 연결돼 있다.

이번 주 수요일에는 로우스 실적 발표가 예정돼 있다. 홈디포와 같은 톤이 나오면 ‘미국 소비 둔화’ 시나리오에 무게가 더 실릴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이 다음으로 봐야 할 변수는 미국 5월 소매판매 지표, 모기지 금리 추이, 그리고 유가 흐름이다. 휘발유값이 다시 진정되면 닫혀 있던 미국 소비자 지갑이 다시 열릴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