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내 두들겨 맞던 미국 소프트웨어 종목들이 드디어 반격에 나섰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통째로 잡아먹을 거란 공포가 시장을 짓눌러왔지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화요일 뉴욕증시에서 워크데이, 서비스나우, 세일즈포스가 일제히 1.4%에서 2.4% 사이 상승했다. iShares 확장 테크-소프트웨어 섹터 ETF는 장중 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흥미로운 건 같은 날 반도체주는 식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이달 초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숨고르기에 들어갔고, 자금은 그동안 외면받던 소프트웨어 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연초 이후 소프트웨어 ETF는 12.2% 빠졌고, S&P500 소프트웨어·서비스 지수도 13.7% 하락한 상태였다. 반도체가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동안 소프트웨어는 정반대로 굴러떨어진 셈이다.

사이버 보안주의 움직임은 더 두드러졌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옥타, 세일포인트, Z스케일러가 1%에서 2.6%까지 올랐고, 앰플리파이 사이버시큐리티 ETF는 사상 최고가까지 터치했다.

AI가 보안 영역에선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수요 확대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시각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즈호의 시니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애널리스트 그렉 모스코비츠는 인내심 있는 투자자라면 지금 소프트웨어 섹터에서 꽤 매력적인 종목들을 골라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장은 모든 소프트웨어를 똑같이 보지 않는다. 옥석 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게 핵심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서비스나우엔 매수 의견을 유지하면서, 이 회사가 대기업 워크플로우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 대체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세일즈포스에는 ‘언더퍼폼’을 내걸며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구조적 변화가 닥쳤다고 지적했다.

같은 SaaS 진영이지만 평가는 정반대다. 시드(좌석)당 과금 구조에 의존하는 기업과, AI 전환의 중심부에 위치한 기업 사이에 시장이 선을 긋고 있다는 얘기다.

이 흐름은 한국 시장에도 시사점이 크다. 국내 SaaS와 IT 솔루션 종목들 역시 AI 대체 우려로 멀티플 부담을 키워왔다. 더존비즈온, 한글과컴퓨터, 영림원소프트랩, 가비아 같은 종목들이 비슷한 맥락에서 평가받는다.

미국에서 ‘AI 수혜형 소프트웨어’와 ‘AI 피해형 소프트웨어’를 가르는 작업이 본격화되면, 국내 SaaS 종목군에서도 비슷한 재평가 흐름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매출 구조, AI 기능 탑재 속도, 기업 고객 락인(lock-in) 강도가 핵심 잣대다.

물론 이번 반등을 추세 전환으로 단정 짓긴 이르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마진과 비즈니스 모델을 AI 위협 속에서도 지켜낼 수 있다는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게 월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투자자들이 다음으로 봐야 할 변수는 명확하다. 서비스나우, 세일즈포스, 워크데이의 다음 분기 실적 가이던스, 엔터프라이즈 AI 도입률 지표, 그리고 사이버 보안주의 신규 계약 흐름이다.

‘AI 공포’ 한 줄로 묶여 매도되던 시기는 일단 멈춤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금부터는 종목별 실력 차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