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이틀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추가 군사 타격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정작 시장은 그 경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09달러선에서 거래되며 전날의 0.7% 하락세를 그대로 이어갔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2달러 부근까지 밀렸다. 12주째 이어지는 이란 사태가 원유 시장의 핵심 변수임에도, 트레이더들은 “이란이 협상을 원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흐름이다. 최근 24시간 동안 유조선 3척이 해협 통과를 시도한 것으로 포착됐다. 이란 측은 같은 기간 26척이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통행량 자체는 여전히 평소보다 적지만, 사실상 막혀 있던 물길이 조금씩 열리는 신호로 해석되며 유가 하단을 눌렀다.
UBS의 원자재 애널리스트 지오반니 스타우노보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지난밤 일부 탱커가 해협을 통과한 점이 유가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호르무즈를 통한 선박 호위 작전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더해졌다. 7월 초까지 항로가 막혀 있을 경우 NATO 함정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골드만삭스 조사에 따르면 시장은 이미 ‘장기 봉쇄’를 어느 정도 반영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NATO 개입이 현실화될 경우 오히려 공급 정상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이 디젤과 항공유 수입을 위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일부 제재를 사실상 완화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만큼 에너지 가격 상승이 주요국 정책에 직접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채권시장 흐름도 유가에 영향을 줬다. 미 국채 30년물 금리가 2007년 이후 최고치까지 뛰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지만, 이날은 매도세가 다소 진정됐다. 유가와 장기금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채권시장의 숨 고르기는 위험자산 전반에 안도감을 줬다.
국내 시장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정유·항공·해운주는 호르무즈 변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이다. SK이노베이션, GS, 에쓰오일 같은 정유주는 단기 유가 변동에 따라 정제마진 기대치가 출렁이고, 대한항공·HMM 등은 유류비와 운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원/달러 환율과 맞물려 수입물가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미국 내부 상황도 시장이 주시하는 포인트다. 백악관은 원유 재고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수출 제한 카드는 꺼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원유 재고는 910만 배럴 감소했는데, 공식 발표에서 확인될 경우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옵션시장에서는 이미 큰돈이 움직이고 있다. 전날 브렌트유 풋옵션 시장에서 1억3400만 배럴 규모의 대형 베팅이 단일 블록으로 체결됐다. 유가 하락에 베팅한 자금이 한꺼번에 들어왔다는 의미로, 시장의 경계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다음 체크포인트는 분명하다. 미국 공식 원유재고 발표, 호르무즈 통항량 변화, NATO 호위 작전의 구체적 윤곽,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발언이다. 이 네 가지 변수가 단기 유가 방향성을 결정할 핵심 재료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