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미국 여행 시장이 두 갈래로 쪼개지고 있다.
이란 사태에서 촉발된 유가·물가 상승이 가계 지갑을 압박하면서, 저소득층은 여행을 포기하고 중·고소득층만 휴가를 떠나는 양극화 흐름이 뚜렷해졌다. 항공·호텔 업종 주가는 한 달 새 S&P500 대비 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2분기 실적 둔화 우려를 선반영하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14일 공개한 소비자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 가구의 약 40%는 올여름 여행 계획이 아예 없다고 답했다. 카드 결제 데이터에서도 이들의 여행 관련 지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상위 소득층은 여행 지출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전형적인 'K자형' 소비 분화다.
여행 비용 자체도 가파르게 뛰었다.
너드월렛이 산출하는 여행물가지수(Travel Price Index)는 1년 전보다 9% 올랐다. 항목별로 보면 항공료가 20.7% 급등했고, 숙박은 4.3%, 외식과 엔터테인먼트는 각각 3.6%, 5.5%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 소비자물가는 3.8% 오른 점을 감안하면, 여행 관련 물가 상승률이 전체 인플레이션을 두 배 이상 웃돈 셈이다.
시장 반응은 즉각 주가에 반영됐다.
힐튼(HLT)은 한 달 새 5% 하락했고, 메리어트(MAR)도 3% 빠졌다. 델타항공(DAL)이 6%, 에어비앤비(ABNB)가 2% 오르며 일부 종목은 선방했지만, 같은 기간 S&P500이 8%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여행주 전반은 시장 수익률을 크게 밑돌았다. 2분기 실적이 시즌 기대치를 하회할 가능성이 가격에 녹아들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소비 여력 자체가 빠르게 식고 있다는 점이다.
씨티 애널리스트 존 타워의 분석에 따르면,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가구의 4월 실질 구매력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중간 소득층(5~7만 달러) 역시 필수 지출이 1년 전보다 월 90달러 이상 늘었는데, 이 증가분의 대부분이 최근 두 달 사이에 집중됐다. 휴가에 쓰려던 돈이 기름값과 식비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다.
한국 투자자에게도 시사점이 작지 않다.
국내 항공주와 호텔·면세 업종은 미국 소비 흐름과 글로벌 여행 수요에 민감하다. 미국 중하위 소비층의 위축은 글로벌 여행 수요 둔화로 번질 수 있고, 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하나투어 등 한국 여행 관련주 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고소득층 중심의 럭셔리 여행 수요가 견조하다는 점은 프리미엄 호텔과 고가 패키지 상품에는 기회 요인이다.
앞으로 주목할 변수는 분명하다.
7~8월 발표될 미국 항공·호텔 업종 2분기 실적, 국제 유가 흐름, 그리고 중동 정세 안정 여부다. 여기에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소매판매 지표가 추가로 둔화될 경우, 여행주 조정이 더 깊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시장의 시선은 '누가 떠나는가'보다 '얼마나 더 못 떠나는가'에 쏠리고 있다.